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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품평

100일 부부

100일 부부/윤모카
노꼴

제가 이 바닥에 15년 있었습니다. 이 업계의 많은 책을 봤구요, 명작, 평작, 졸작 많이들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그런 뭐 이런저런 감정이 들기 마련이죠. 진짜 대꼴인 책이라서 페이지를 다 넘겨도 찌릿찌릿한 책도 있고. 자극은 그저 그랬지만 거 참 알콩달콩하니 예쁜 책이네 하는 것도 있었고. 단순히 재밌는 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이게 책인가 하고 한심하다는 감정.. 여러 생각이 들죠. 지금은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아십니까? 불쾌합니다. 이런 책은 처음입니다. 글을 그냥 못 쓴 수준이  아니예요. 그래서 별점을 매기지 않았습니다. 등 외라는 소립니다.

제가 현대물만 보는 이유는, 남녀관계 외의 어떤 초자연적 요소도 글에서 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판타지도 그렇고 시대극으로 가면 미신, 특히 무(巫)적 요소가 나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시대가 시대고 뭐 저주를 위해, 해주를 위해 바늘로 뭘 찌르고 주문을 외고 그런게 허용되는 배경이니까요. 반면 현대물에서는 그런 설정이 등장할 가능성이 많이 낮죠. 상술했듯 저는 책에서 갑자기 파지직 하고 뭔가 통하는 건 남녀관계 이외에는 보기 싫었기 때문에, 그래서 현대물만 봐 왔고 그런 전략은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유효했습니다. 망할

장르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분명 구글북스의 상품 설명에는 로맨스가 아닐거라는 낌새가 없었는데. 처음에는 로맨스인줄 알았는데 읽다 보면 기시감이 들고, 권수가 넘어갈 시점이면 로맨스 약간 들어간 드라마로 변질됩니다. 로맨스에서 살 날리고 부적 태우고 전신성형 하고 칼로 사람 썰고 있으면 그게 로맨습니까? 던파지
플롯이 별롭니다. 근본적으로, 극중 주요 사건의 타이밍 배치가 별롭니다.
뼈대가 별로면 살로 커버를 해야겠죠. 근데 전개하는 글솜씨도 별롭니다. 개개 문장부터 별로 특이할 게 없거니와 장(혹은 각 연재회차) 내부의 구성이나 특출나지 않고 극중 장치랄것도 없어요.
그래서 스토리텔링 선 자체에 미처 커버하지 못하고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는데 이걸 미신적 요소로 덮어버립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섬뜩해요.

작가가 뭘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더 위쪽 레벨에서 노는 작가들은 여러 장르를 섞어서 수준급의 글을 써내는 경우가 분명 있어요. 하지만 사람은 자기객관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왜 이렇게 됐더라? 어 그거 그 미친년 때문이잖아! 그래? 그 미친년은 어떻게 일을 벌렸대? 야 그 미친년이 옛날에 최면동아리였잖아!"
"그 아저씨는 왜 그랬대? 중간에 안 나오는데? 야 책 끝에 보니 사실 남자가 돈으로 찔러서 다 조종하고 있었다더라!"
이런식으로 극중 사건을 수습 할수밖에 없는 실력으로 두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글을 쓰겠다고 판을 너무 크게 벌렸어요.
드라마로써도, 로맨스로써도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 졸작이 나왔으니까요.
무당 부적 최면 전신성형 가스라이팅 온갖 싸구려 비현실적 소재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더라면 그쪽 욕심은 접고 로맨스에만 집중했어야 했습니다. 칼찌를 놔도 빗나간 사랑에 칼찌 놓는거랑, 10년간의 정신병 투병 끝에 칼찌 놓는건 다릅니다.
로맨스에 집중했다 쳐도 좋은 글은 안 나왔겠지만 적어도 책을 읽고 혐오라는 감정은 안 들었을거예요. 작가가 자신의 판 짜는 능력을 너무 과신한 결과인가? 싶을 정돕니다.

사실 제목에 끌렸어요. 100일 부부라니. 그와 그녀의 90일이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이것도 그런 좋은 책이었으면 좋겠다.. 하고 집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네요.

표지를 받으려고 구글링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연재처에 동명의 책이 또 있더군요. 표지부터가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요. 제가 헷갈려서 김기욱씨가 인상쓰고 있는 왼쪽 책 대신 오른쪽 책을 결제했더라면, 노꼴이라도 알콩달콩한 책을 읽고 하루를 기분좋게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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